백병원 현대화 공사는 1971년 초부터 공사비 조달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 계획된 공사비를 초과했고, 담보 감정액이 낮게 책정되는가 하면 공사비에 충당하고자 했던 토지 매각도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시공 업체가 수차례 바뀌었는가 하면 심지어 1971년 4월 영락교회는 백병원을 인수하기 위한 백병원인수위원회를 구성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백낙환 원장은 이러한 좌절을 딛고 천신만고 끝에 1972년 3월 부분 준공할 수 있었다.

백인제 박사의 장남인 백낙조 전 이사장이 서독에서 의사 생활을 하던 중 백병원 중흥을 위해 1970년 7월 귀국하여 백병원 재건에 힘썼다.

상단. 백병원 현대화 공사 사진. 지금은 철거된 청계 고가 도로가 새롭다.

좌. 백병원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백낙환 전 이사장
우. 백병원 공사 현장에서 백낙환 전 이사장과 고 백낙조 전 이사장

백병원은 1972년 3월 7층까지 부분 준공해 가사용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개원식을 앞두고 건축비를 받지 못한 건축업자가 열쇠를 주지 않아 부랴부랴 개원식을 연기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건축비는 개원 후 천천히 갚는다는 조건으로 16개과 140병상의 현대식 종합 병원을 개원했다. 좌. 7층까지 부분 개원할 당시의 백병원. 우. 설립자 백인제 박사 사진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백낙환 전 이사장과 고 백낙조 전 이사장.

1972년 3월 백종합병원 완공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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